제가 한의사가 되게 만든 사건 - 두드러기와 극심한 가려움증

2012. 11. 22. 12:14이것저것/기타

고교 시절 어느날 갑자기 격심한 질병이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닌 극심한 가려움증과 두드러기였습니다. 공부를 도저히 할 수가 없고, 자다가도 긁다가 깰 정도였습니다. 제가 꼬맹이 시절부터 늘 자상하게 봐주시던 남같지 않은 의사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우선 그 의사분께 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같은 건물 바로 위층에 있는 며느님한테 보내주셨습니다.

 

 

원장님의 며느님은 이대를 나오신 피부과 전문의 선생님이셨습니다. 대단한 미인이셨습니다. 진료받고 약을 타왔습니다. 왠지 기분에 금방 싹 나아버릴 것 같았습니다. 역시 약을 먹었더니 약효과가 너무너무 좋습니다. 약을 먹지마자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전혀 가렵지가 않고 거칠었던 피부가 도자기 같은 아기 피부로 바뀌어갑니다. 이젠 살았다 싶었습니다. 진작에 찾아올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한 1주 정도 지나니 다시 슬슬 가려워옵니다. 그러더니 다시 미칠 듯이 가렵습니다. 제 깜냥에 생각하기를 ' 약을 좀 더 먹어서 완전히 뿌리를 뽑았어야 했는데, 아깝다. 조금만 더 약을 먹으면 완전히 낫겠지..'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피부과에 가서 다시 진료받고 또 약을 타왔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효과 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약효가 한 4-5일 밖에 지속되질 않았습니다.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다시 피부과 의사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샤워를 너무 자주 하지 말고, 보습 로션을 부지런히 바르라' 고 하셨습니다. 약도 또 처방받았습니다. 시키는대로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약빨이 전혀 듣질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파본 것이라고는 그저 감기 밖에 없었던 당시 고등학생인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다시 피부과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그저 난감한 표정만을 지으셨습니다. 약도 더 이상 처방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치료를 중단하고 한동안 자포자기 상태로 살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를 가서 성공해서 부모님께 이것저것 많이 해드리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착실하고 순진한 고등학생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바로 집 앞에 있는 한의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집 앞에 있었다 해도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한의원이었습니다. 한의원에 들어가자마자 느낀 첫 인상은 실망스럽고 왠지 신뢰가 가질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정체모를 약재가 진열되어 있고, 흰 머리가 성성한 한의사 아저씨가 가운도 안 입고 있었습니다. 한약 냄새도 썩 기분이 좋질 않았습니다. 으리으리한 병원 건물에서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계시던 멋진 피부과 원장님과 너무 비교됩니다. 그래두 진맥을 짚고 약을 지어 왔습니다. 당시엔 지금과 같은 파우치도 없어서 박카스 병같은 유리병에 한약을 넣어 먹던 시절이었습니다. 약 들고 오는데 엄청나게 무거워서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받아온 한약을 열심히 먹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도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날이 갈수록 점점 실망감이 짙어지고 있었습니다. 하긴 그렇게 훌륭해 보이는 피부과 원장님도 못 고친 내 병을 그 한의사 할아버지가 어떻게 고치겠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다른 대안이 없고 기왕 지어온 약이라 밑져야 본전입니다. 약을 거르지 않고 열심히 복용해야 나중에 한의사한테 항의라고 할 수 있지라는 생각에 빼먹지 않고 복용했습니다.

 

 

그런데 거의 10일 정도 되었을까.. 드디어 반응이 옵니다. 그런데 그 반응이 뭐냐면 더욱 악화된 것이었습니다. 가려움증은 더욱 심하고 두드러기도 훨씬 더 격렬해졌습니다. 아! 역시 그 한약방엘 가는 것이 아니었어.. 어머니는 왜 나를 그런 이상한 곳으로 데리고 가셨을까.. 낫기는 커녕 더 심해지다니 절망감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그러데 참 신기하게도 '이게 혹시 나으려고 그런건가? 명현반응이라는 것이 있다던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겨우 고등학생이 우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기특합니다.^^ 그래서 어차피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이판사판이다 싶어서 한약을 쉬지 않고 더 복용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려움에 몸부림을 치면서 저도 모르게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신기하게도 가려움증이 한결 덜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다음 날 하나두 가렵지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엔 전혀 가렵지가 않았습니다. 완전히 나아버렸습니다.

 

 

제 피부병을 고쳐주신 한의사 원장님은 서울 용산고 정문 앞에 위치한 장양한의원 원장님이십니다.^^ 워낙 연로하셔서 지금도 진료를 하시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이후 한의대 학생이 되어 양방 피부과 공부를 해보니 제가 겪은 일은 아주 흔한 일이며 당연한 것이었더군요. 이런 경우, 피부과에서 처방하는 약은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입니다. 항히스타민제는 인위적으로 가려움증을 억제합니다. 그리고 스테로이드는 강력하게 염증반응을 가라앉힙니다. 단, 약이 작용하는 일정 시간동안만 그렇습니다. 근본 치료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강력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로 나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짜로 나은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조절된 것이거나 또는 시간이 흐르면서 몸 스스로 회복해 낸 것이지 약이 병을 고쳐준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한의학에 낚일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