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인줄도 모르고 을이 되어버린 환자분

2013. 11. 21. 11:24가칭: 교통사고 지키미-집필중/환자분과의 잊지못할 이야기들

갑인줄도 모르고 을이 되어버린 환자분

 

어느 날 한 아주머니께서 처음으로 제게 내원하셨습니다. 교통사고로 어깨관절 등 여러 곳을 심하게 다친 분이셨습니다. 방금 전에 합의를 하고 바로 제게 달려오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알고 오셨냐고 여쭈어보니 사고로 입원했을 때 같이 입원해 계시던 어떤 분이 여기로 가보면 잘 봐줄 것이다라고 소개해주셔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 찾아오셨습니다. 제가 잘 낫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합의는 다 나아서 이젠 치료가 필요없을 때 해야 하는데 이렇게 여러군데 많이 아프신 분이 왜 벌써 합의를 해주셨나요?' 라고 여쭈어보니 하시는 말씀이 '합의를 안 보면 집에 못 간다고 해서요' 라고 하시더군요. '퇴원하신 후에는 통원 치료를 받으시면 되니, 합의를 보는 것과 집에 가시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인데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아, 그래요? 몰랐어요. 가족들 밥도 해줘야 하고 빨래도 밀렸는데 그래서 집에 가야 하는데,  합의를 안 보면 의사가 집에 안 보내주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급하게 합의를 봤어요' 라고 하시더군요.^^ 아마도 이 아주머니께서는 교통사고를 당하면  오직 입원치료만이 보험처리로 가능하며 통원치료란 없다라고 오해를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보상담당자가 합의를 안해주려고 해서 정말 어렵게 합의를 봤다는 것입니다. 합의를 의논하기 위해서 보상담당자와 만나서 얘기를 하는데 피해자로서 보상금 얘기를 꺼내니 보상담당 직원이 '자꾸 이러시면 저는 합의 못해드립니다.' 라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을 애원하고 매달려서 다시 자리에 앉혀서 간신히 합의를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받은 합의금의 액수가 참.. 기가 막힐 정도로 적은 금액이었습니다. 물론 합의금이라는 것은 법으로 정해진 것이 없긴 합니다만 그래도 상식적인 대략의 선이 있는 것인데, 그 돈으로는 치료 몇 번만 받으시면 합의금보다 치료비가 더 나올 지경이었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었지요.

 

그야말로 갑인 자가 을인 것으로 착각하는 통에 을이 갑이 노릇을 한 셈입니다. 그래서 차근차근 알려드렸습니다. 퇴원 후에는 통원 치료가 가능하니, 그렇게 급하게 합의를 해야할 이유가 없으며, 합의란 것은 피해 보상에 대한 협상이니 당연히 피해자가 갑이고, 가해자는 을이다라는 것을요..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께서 너무나 기가 막히게도 속아서 너무 분하다면서, 눈물을 다 흘리시더군요. 

 

 그래서 이 아주머니는 제가 합의취소를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렸고 다행이도 합의 취소가 받아들여져서 다시 손해보험사의 지불보증하에 본인부담 없이 치료를 받으실 수 있게 되셨답니다. 제게 연신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나중엔 '원장님이 절 살려주셨어요' 란 과분한 말씀까지 하셨습니다.^^